라이프로그


미국의 학교 급식 문제 (Fed Up with Lunch) by Alyson

엑셀 센터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얘들이 뭘 먹고 다니는지 알게 됐는데, 사실 이미 그때부터 충격이긴 했다. 
아무리 비정규학교라지만, 아무리 교육 덜 받은, 빈곤 계층 인구가 모이는 곳이라지만, 만 세 살도 안 된 애들한테 점심 시간에 초코바와 콜라를 쥐어주는 광경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같은 교실에 있던 대부분의 십대들은 하루 종일 굶는 게 일상이었다. 늘 허기진 아이들을 위해 미스 조시 같은 선생들은 시시때때로 빵, 과자, 음료를 교실 앞 뒤에 놓아주고 아이들을 먹였다. 그나마 아이를 키우는, 조금 더 큰 사람들은 자기는 굶어도 애는 뭐라도 먹여야 하니 점심 시간이 되면 학교 앞 편의점에 달려가 가장 싼 먹거리들을 주섬주섬 사오곤 했다. 그 봉지에서 나오는 것들은 대개 짜디짠 1달러짜리 감자칩 한 봉지, 아니면 미친듯이 달기만 한 초코바, 그리고 콜라, 마운틴 듀, 닥터페퍼, 이런 것들이었다. 

산이를 헤드스타트 교실에 넣게 되면서 이 나라의 학교 급식을 직접 경험하기 시작하니 점점 이 문제가 우리의 문제로 확 다가온다. 헤드스타트 교실엔 키친이 딸려 있지만, 조리실 개념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모든 음식은 대용량 캔에 담긴 통조림 음식. 키친에서 일하는 할머니 급식사가 하는 일은 이 통조림 음식을 플라스틱 볼에 옮겨 담아 데워 내는 일, 그 뿐이다. 보통 메뉴는 아이들 손바닥 만한 햄버거 빵 사이에 역시 아이들 손바닥만한 고기를 끼워 넣은 '햄버거'와 데친 콩, 데친 브로콜리, 작게 깍둑썰기 된 당근, 옥수수알, 통조림 과일, 그리고 우유. 이게 전부다. 우유와 빵을 제외한 모든 음식이 통조림 음식이어서, 채소는 모두 물렁하고 아무 맛이 나지 않는 통조림 채소일 뿐이고, 과일 역시 달디 단 시럽에 절인, 본래의 과일 맛은 전혀 나지 않는 통조림 과일일 뿐이다. 생전 통조림 음식을 먹어본 적 없는 우리 아이에게, 억지로 이 말도 안되는, 쓰레기 같은 음식들을 먹어야 한다고 들이밀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어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산이 반에서 실습하고 자원활동 하는 동안엔, 산이가 점심을 잘 먹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선생들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니까 아이에게 억지로 들이미는 걸 자제하기도 했고. 

선생들도, 급식사 할머니도, 모두 이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선에서 손쓸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나마 우리 반에선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선생들과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최소한 우리 선에선 이게 문제적이라는 것까진 공유되어 있고, 선생들도 급식사 할머니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 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 덕에 애들이 과일로 생 바나나도 서너 번 먹었고, 샐러드도 두 번쯤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반에선 학부모들조차 관심이 없다. 저소득 계층의 부모들일수록 음식 문제에 무감해지기가 쉽다. 많은 경우 이 아이들이 그나마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때가 학교 점심시간인 것도 사실이다. 이 부모들이 뭐 엄청 나빠서가 아니라, 워낙 주머니가 가벼운 상황이니 값 싸게 많이 살 수 있는 과자/통조림/탄산음료들에 훨씬 더 손이 잘 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이 문제로 평소에 신경이 쓰였는데, 취학 연령이 되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해도 이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암담해졌다. 가공식품을 데워서 내놓기만 하는, 심지어 우유도 초코우유로만 주는, 여전히 과일은 통조림 과일을 주고 거기다 과일 주스에 과일 맛 나는 싸구려 막대 아이스크림을 주는 학교가 있다니. 아니 심지어 많다니.. 정말 절망적이다. 정체 불명의 치킨 너겟, 생선 너겟에 바비큐소스 잔뜩 뿌려 먹는 산이네 반 애들 보면서 정말 어이 없었는데..그 너겟에 찍힌 그릴 마크를 보고 '그래도 이건 직접 굽는 건가보네' 하고 생각했다가 그게 가짜 그릴 마크인 걸 뒤늦게 알고 충격 받았을 때의 그 기분도 아직 잊을 수가 없는데.. 

게다가 이렇게 심하게 달고 심하게 짠, 영양분이라곤 1도 없는 음식을 애들 점심으로 주는 학교들에 쉬는시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당 과다섭취로 아이들은 날뛰는데, 이 애들을 풀어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안 나와버리면, 이 애들은, 공교육 현장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대체 왜 이렇게밖에 못한단 말인가. 이렇게 자원 넘쳐나는 나라에서, 왜. 왜! 게다가 급식 문제, 라고 했을 때 여기엔 음식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매일 버려지는 음식물의 양도, 음식을 받느라 쓰이는 일회용품의 양도 어마어마해서 매우 문제적이다. 너무 쉽게 일회용품을 쓰는 문화여서, 이렇게 어린 나이의 아이들부터도 이 쓰레기를 양산하는 문화에 가담하게 되는 게 너무 슬프다. 일회용 포크, 일회용 스티로폼 컵, 일회용 스티로폼 접시에 통조림 식품을 받아서 맛도 없는 음식 억지로 먹고, 그마저도 다 먹을 수 없어서 음식의 절반 이상을 버리게 되는 걸 보는 일이 정말 힘들다.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섞어서 버리는 것도 너무 화 나고,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벌써 이런 일에 무감해져 가는 걸 보는 건 너무 속상하다. 저소득 계층 아이들일수록, 학교에 있는 시간만이라도 조금 더 자존감과 안정감을 갖게 해 주는 게 좋은데. 급식 시간에 온통 플라스틱/스티로폼을 쓰니 그런 게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다. 

그나마 우리는 교육받은 이민자 가정이라 경제적 여건만 나아지면 우리 아이 하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시스템에서 빼낼 방법이라도 있다. 쌈닭 기질 발휘해 학교랑 싸울 준비도 되어 있고, 마침 읽은 이 책 Fed Up with Lunch 덕분에 앞으로의 행동요령도 파악했다. 한번씩 일부러 학교에 가서 애랑 같이 점심을 먹어보면서 학교 급식 파악하기, 매달 한달 치 메뉴를 미리 훑은 다음 애랑 상의해서 어느 날 도시락을 싸 가고 어느 날 급식을 먹을지 정하기, 담임, 과목별 교사, 특수교육 교사, 체육 교사, 영양사, 학교 간호사 등 모든 접근 가능한 인적 자원을 충분히 활용해 문제의식 공유하기, 학부모/교사 월간 모임(PTO)과 웰니스 커미티(Wellness Committee)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로컬 리소스와 연계해 관련 펀딩/행사 유치하기 등등.. 하지만 이렇게 부모의 빈부격차에 따라, 교육 수준과 의식/경험의 수준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지는 문제를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해결하라고 하기엔,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위해가 너무나도 크다. 대체 왜 아이들이 이렇게나 고통받아야 하는걸까. 모두의 아이들을, 모두가 함께 잘 길러내는 것, 그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일까. 왜. 대체 왜! 

아 난 정말이지...앞으로 정녕 쌈닭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 너무나도 괴로운, 그러나 너무나도 시의적절한 독서였다. 내가 미국에서도 책을 내게 된다면, 내 이런 특수한 위치성으로 인해 경험한 다양한 것들을 엮어 굉장히 문제적인 수작(!)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ㅋㅋ 미국 학교급식개혁 역사에 한 획을 긋는..뭐 그런..? ㅋㅋ
 

54개월, 유아사춘기 by Alyson

요즘 부쩍 감정/행동 기복이 심해서, 꼭 사춘기 같이 얘가 왜 이러지? 싶었는데 육아책을 뒤적여보니 만 5세 무렵이 딱 그렇단다. 언제나 내게 시의적절한 참조점이 되어주는 닥터 브레즐턴의 책. ㅋㅋ

산이가 요즘 하는 말/행동이 정말 사춘기 애들이 하는 거랑 똑같다.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선이 있는데, 그 이유/선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느낄 때, 화가 폭발한다. 
장을 보러 같이 가면 자기도 나름 먹고 싶은 것, 선호도와 우선순위가 다 있는데 엄마가 그걸 수용하지 않을 때 마구 화를 낸다. 
하루는 장을 보러 가서 "식빵에 크림치즈 발라 먹으면 좋겠는데." 하고 거의 혼잣말 하듯이 말했는데, 내가 "오늘 우리 크림치즈 사러 온 거 아니야." 했더니 난리가 났다. 정말 웃긴 건 "크림치즈 사 줘"가 아니라 "크림치즈가 있으면 좋겠는데." 하고 말한다는 것. ㅋㅋㅋ
얼마전에 캠퍼스에서 매주 열리는 장터에서도 그랬다. 뭔가에 골이 난 애를 유모차에 태우고 밀면서 걷는 중이었는데, 애가 뭐라뭐라 중얼거리는 걸 제대로 들을 수 없어서 잠시 멈춰 세우고 다시 물었더니 대뜸 "(아니 뭐 그냥...이런 톤으로, 소심하게,) 맛있겠다고.."라고 말했다. ㅋㅋㅋ 달콤한 빵을 파는 테이블을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저거, 빵 말하는거야?" 했더니 맞댄다. 사 달라고는 안한다.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ㅋㅋㅋ  

한살 반 어린 동생들이랑 놀면서 제 나름 참기도 하고, 배려도 해 가며 형 노릇을 하다가도, 그 애들이 자기 말귀를 못 알아 들으면 어이없어하며 짜증 폭발. 놀이터에서 모르는 애들이랑 잘 섞여 놀다가도 그 애들이 제 때 놀잇감을 양보하지 않거나 하면 또 화 폭발. 그래도 보통은 화와 짜증을 혼자 적절히 푼다. 일시적으로 굉장히 과격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행동을 크게 해서 팔짱을 끼고 발을 구르는 때가 있긴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잠시 주면 혼자 풀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떤 때는 혼자 방에서 베개도 던져보고 발도 마구 굴러보고 꽥꽥 거리며 울어봐도 분이 안 풀리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슬쩍 얼굴을 내밀고 내게 말한다. "그래도 기분이 안 풀려. 엄마가 안아주면 좋겠어." 하고. 오늘은 놀이터에서 내가 뭘 못하게 했더니 엄청 성질 피우면서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듣고 배웠는지 "It's UNFAIR!" "I DON'T CARE ANYMORE!"(이건 불공평해! 몰라 됐어!) 이라고 외치면서. ㅡㅡ 내가 "그럼 이리 와 봐. 대안을 제시해줄게." 했더니 "I'll be there in 10 minutes. But NOT NOW."(지금은 싫어. 10분 뒤에 갈거야!) 하고 자존심 한 번 세운 다음 결국 내게 오더라.  

청소년기의 사춘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다. 
청소년기엔 엄마 아빠에게 '그래도 기분이 안 풀려. 엄마가 안아주면 좋겠어' 라고 말하지 않을만큼/못할만큼 독립된 자아를 갖게 되는 데 반해, 지금 시기엔 '그래도' 엄마 아빠밖에 없어, 이런 마음이 있는 것. 
그리고 소리 꽥꽥 질러가며 분풀이를 하다가도, 기분이 풀리고 나면 쪼르르 와서 내 허벅지를 껴안으며 "사랑해" 하고 뜬금없는 고백을 하기도 한다는 것. 아아 10대의 박산에게선 이런 걸 기대하면 안 되는 거겠지. 괜찮아. 그 나이땐 다 그래. ㅋㅋ 대신 지금 이 유아 사춘기를 충분히 즐겨주겠어! 

드림 랜드(Dream Land: The True Tale of America's Opiate Epidemic) by Alyson

미국 생활 6년. 늘 궁금했다. 
총과 약 때문에 하루에도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죽어나가는 걸 보며, 
대체 왜 이 나라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걸까 궁금했다.
총과 약, 따로 떼 놔도 충분히 치명적인 이 문제들이 한데 뒤엉켜 지역 신문에 실릴 때, 
또 바로 내 주위에서 일어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더 이해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특히 내가 궁금했던 지점은 암거래를 통해 매매되는 마약류가 아니라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과다복용해 중독이 되고 사망에 이르는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곳엔, 그런 이야기가 차고 넘쳤다. 대체 의사가 처방한 약을 과다복용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여긴 처방전이 필요한 약은 일반약보다 훨씬 더 비싼데 말이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처방된 비싼 약물을,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독되기 위해 찾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런 의문을 내내 품던 중 찾은 책, <드림 랜드>는 아편성 약물에 중독된 미국 사회에 관한 이야기다. 
읽는 내내 괴로웠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나라의 아편성 약물 중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벌어진 일이었다. 그 많은 연결 고리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약한 데가 있어 끊어질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 알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 시작은, 어이없게도 '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움직임, 그것이었다. 90년대 후반, 미국 의학계에서는 사람의 활력 징후를 판단하는 4대 바이탈 사인(호흡, 맥박, 체온, 혈압)에 '통증'을 추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건 실제로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정말 필요한 일이긴 하다. 나처럼 평생 특별히 통증이란 걸 느껴본 일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야 통증을 0에서 10 사이의 수치로 표현하는 일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우리 애가 갖고 있는 KT/CLOVES만 해도, 남들은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만성 통증 환자에겐 통증을 호소할 때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줄, 그래서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의료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른바 '통증 클리닉'이라는 이름의 의료시설, 통증 전문가 과정, 통증 전문 의학 학술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통증'을 완화해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너무나도 다양한 요소, 다양한 이해관계와 얽히면서 다각적 접근에 대한 필요성마저 통째로 버려지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책임은 아편성 진통제인 옥시콘틴(Oxycontin)을 제조해 팔면서 이 약에 중독성이 없다고 허위/과장 광고를 해댄 제약회사 퍼듀 파르마(Purdue Pharma)에게 있다. 이 회사는 이 약을 내놓으면서 1) 이 약은 시간 간격을 두고 체내에 흡수되기 때문에 중독성이 없다, 2) 아편성 약물에 실제로 심한 중독 반응을 보이는 환자는 1% 미만이다, 3) 중독성이 있다 하더라도 통증이 극심한 경우에는 그 통증의 극심한 정도 때문에 중독성이 약화된다는 점을 들어 이 약에 중독성이 없다고 광고했다. 그것도 매우 공격적으로, 일차진료기관 의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광고를 뿌려댔다. 그런데 이 세 이유 모두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설정된 것들이었다. 특히 이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한 두 번째 이유(1% 미만 운운하는)의 경우 그 근거가 되는 자료가 의학 논문이 아니라 학술지 맨 뒤에 짧게 실린 메모 형식의 글에 불과했다. 1)의 이유는 실제로 약은 그렇게 만들어졌지만 캡슐을 깨서 가루 형태로 한번에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지는 이유였고, 3)도 충분한 연구를 통해 입증된 게 아니라 그저 가설에 불과한 얘기였다. 

약을 만든 회사에서 그렇게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해대며 '안전하다'고 주장하니, 바쁜 1차진료기관 의사들은 통증 환자가 오면 손쉽게, 별 거리낌없이 이 약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통증 환자의 진짜 통증 원인을 찾자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이것저것 검사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자원 투자에 비해 원인 찾기가 쉽지 않다. 보험회사에서도 시간/자원 드는 상담, 검사,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의료비 보조를 해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늘었다. 그러니 의사들은 시간만 들고 돈은 되지 않는 상담 진료 대신 간편한 약물 처방에 익숙해지고, 환자들 역시 시간 들고 돈 드는 상담 진료 대신 한방에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약물에 기대기 시작했다. 

공장 등 작업 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운동 경기 중 다친 후 만성 통증을 얻게 된 중고등학생들까지, 통증을 호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약이 무분별하게 처방됐다. 그러나 제약회사의 주장과는 달리, 이 약물은 중독성이 매우 강했고, 환자들은 점점 더 농도가 높은 약을 찾았다. 환자들은 이제 통증 때문이 아니라 약 자체에 중독되어 이 약을 찾았다. 사람들은 현금을 받고 이 약을 제약없이 처방해 준다고 알려진 통증 클리닉 의사들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그런 사람들이 동네 곳곳에서 늘어나자 틈새 시장을 알아챈 어떤 이들은 다양한 경로로 이 약물을 입수해 중독자들에게 팔았다. 통증 때문에 이 약을 처방 받았다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된 노인들이 용돈 벌이 삼아 딜러들에게 이 약을 팔았고, 딜러들은 이 약을 무기로 중독자들에게서 현금과 물건을 요구했다. 그리고 멕시코 어느 시골 지역의 가난한 청년들은, 고향 땅에 널리고 널린 아편을 가지고 이 약보다 훨씬 더 센, 블랙 타르 헤로인을 제조해 미국 전역의 중독자들에게 팔았다. 

진통제 한 알 먹는 걸로 시작된 일이, 블랙 타르 헤로인을 정맥에 주사하는 걸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이 벗어나올 수 없는 굴레 속에서 결국 죽어갔다. 한때 이런저런 제조업의 메카로 번성했던, 지금은 쇠락한 미국 중부의 동네들마다, 몸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약을 찾아 좀비처럼 헤맸다. 남들이 번성하고 쇠락할 때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던 서부와 동부의 부유한 동네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백인 중산층, 상류층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어릴 적부터 스포츠 클럽에서 많은 인기와 명예를 누려 온 십대 백인 아이들이 부상과 수술을 거치며 같은 약에 중독되어 죽어갔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고가의 재활시설에 몇 주씩 들어가 지내면서 약을 끊고 회복해서 나오기도 하는데, 헤로인이 워낙 강한 약물이라 완전히 약을 끊고 회복하는 데 2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잘 모르고 재활시설 퇴소 이후 관리를 소홀히 하면 다시 그 소용돌이에 급격히 빨려 들어가 결국 죽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이게, 내겐,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12월, 아이 발등 수술을 하고 나오면서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엔, 바로 이 약물의 한 단계 낮은 버전이랄 수 있는 하이드로코돈(hydrocodone)이 적혀 있었다. 아이는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통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약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고 이 아이는, 이런 류의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 받을 수 있고, 극심한 통증이 있을 경우 이것 외엔 방법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KT 환자들 중에도 이런 류의 진통제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 많다. 비코딘(vicodin), 퍼코셋(percocet) 같은, 이 책에 언급된 약 이름들을 나는 이미 여러 번, KT 환자들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앞으로 살면서 하게 될 숱한 수술과 시술과 검사 과정에서, 이런 약물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게 내 아이다. 최근 우리 까페에서 한 회원이 아이가 모반 치료 때 하는 마취 과정을 즐기는 것 같다는 우려를 표시했는데, 사실 그 우려도 괜한 우려는 아니다. 마취제엔 프로포폴을 포함한 다양한 약물이 섞여 들어가 있으니, 수십 번에 걸쳐 해야 하는 모반치료를 위해 매번 이 마취제를 투여하다 보면 분명 그에 따른, 원치 않는 효과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이는 모반 문제는 별로 크지 않아서 다행인 한편으로, 이렇게 안전성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약물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 같은 사람들의 처지가 참으로, 참으로 큰 대못이 되어 마음에 박힌다. 내 몸이라면, 통증이 극심한데 그저 참기만 할 수 있을까. 아니겠지. 그런데 내 아이의 통증을 보면서 참으라고 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일 거다. 나와 남편, 아이, 그리고 의료진이 함께 최선을 다해, 최선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갖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길게, 기록해둔다. 

 
 

97. 엄마가 간다, 맘스 라이징 by Al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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