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만 5세의 모욕감 by Alyson

유치원 생활 두 달만에, 아이는 처음으로 굉장한 수치심을 느낀 것 같다.
작년에 만들어 입힌 플리스 소재의 바지가 있다. 하늘색 바탕에 빨강 파랑 별이 크게 여기저기 찍힌.
따뜻하고 예쁘다고 즐겨 입던 바지고, 작년에 어린이집 다닐 때 반 친구들이 '예쁘다'고 좋아했던 바지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올겨울을 날 겨울 바지를 구비할 새가 없어서 일단 그 바지를 꺼내 어제 세탁을 했고,
오늘 아침 그걸 본 아이는 반가워하며 바지를 꺼내 입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바지라며.

근데 하필 그 바지에 진짜 안 어울리는 윗옷을 골라 입었는데, 평소 웬만하면 그냥 애가 선택하는 대로 놔두는 게 우리 방침이다 보니 오늘 아침에도 그냥 한번 피식, 웃기만 했을 뿐 애한테 굳이 어울리네 안 어울리네 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그게 나의 불찰이었다...

3시 반에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아이는 날 보자마자 울상이 되어서는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다고 털어놓았다.
반 친구들이 그 바지를 보고 '잠옷바지를 입고 학교엘 왔냐'며 놀렸다는 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두 아이가 심했는데,
잠옷바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단다.
애의 묘사에 따르면 거의 뭐 '얼레리 꼴레리, 잠옷 입고 학교 왔대요' 수준.
그래서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고, 특히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이름을 대며 결국 하루 종일 그 아이와는 말도 하지 않고, 같이 놀지도 않았다고 했다. 하루 종일 '거의 울 뻔' 했고, 계속 기분이 나빴으며, 그 아이들이 왜 그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집까지 오는데 이미 아이 눈가며 코끝이 빨개진 게 보였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래서 엄마 보자마자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했더니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울먹울먹.
'엄마한테 말해줘서 고마워' 하고는 손을 재차 잡으며 집으로 들어왔고,
들어와서 신발 벗고 코트 벗자마자 한동안 안아줬다.
(이 대목에서 나도 거의 울 뻔 했다 ㅠㅠㅠㅠ)

좀 안아주면서 보니 울고 싶어하는 것도 같아서,
지금도 기분이 나쁘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면서 안고 흔들흔들.
'오늘 산이 나쁜 하루였네, 마음이 힘들었겠다, 이제 집에 왔으니 좀 낫냐'
했더니 그렇다고 또 고개를 끄덕.
'자꾸 눈물이 좀 나' 하고는 고인 눈물 닦아내는 정도에서 끝났다.
좀 속시원히 울어도 좋았을텐데 그러진 않았고,
그래도 엄마랑 안고 얘기하고 같이 눈물 닦고 그러니 좀 나은 모양.

다만, 그 '문제의 바지'는 다시는 입지 않으시겠다고 선언.
바지 벗자마자 얼른 받아서 고이 접어 내 서랍장에 넣어두었다....

이 정도로 강한 모욕감을 느낀 건 처음이지 싶다.
오히려 다리 문제에는 이상하리만치 무덤덤한 듯 구는데,
또래 집단에서 겪는 이런 소소하고 답답한 갈등 구도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고 있는 듯.
요즘 다른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실랑이를 지켜보고는 집에 와서 내게 얘기하며 나의 의견을 묻거나 자신의 의견이 정당한지를 내게 확인하는 일이 늘고 있는데, 지금 이 관계를 잘 쌓아 놓아야 십대 시절의 고비를 수월하게 넘길 수 있으리라는 데에 동의한 바, 앞으로도 열심히 이 부분을 고민하며 나아가야지. 지금 이 시기, 아이가 무슨 이야기든 내게 털어놓을 때 마음을 다해 듣고, 진심으로 '엄마에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잘 하고 있어, 산, 그리고 이슬.



종이 케이크 by Alyson

아들이 선물해 준, 종이 케이크.
요즘 그림이 더욱 화려해지고 있다.
케이크엔 꼭 '체리 온 탑'(맨 위엔 체리 하나!)을 올리시는 아들.
이렇게 만들어선 내게 주고, 가위를 갖다준다.
가위로 썰어 먹으라는 뜻 ㅋㅋㅋ



유치원생의 한달 by Alyson

드디어 미국 공립학교 유치원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된 아이.
방학 내내 수영장에 놀이터에 바깥으로 나돌며 실컷 놀아서 그런지 유치원 입학 때가 되어선 얼른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유치원 시작하자마자 매일이 그렇게 재미있단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텐데도, 전반적으론 좋고 즐거운 모양.
젊은 초임 선생님인 미스 러셀이 아이들과 소통을 잘 하는 편인 것 같고,
같은 반 친구들 모두 즐겁고 유쾌하며 친절하단다. (아이와 담임의 말에 따르면 말이지 ㅎㅎ)
매일 스쿨버스를 같이 타는 동네 친구들도 둘이나 있는데,
특히 그 중 한 아이(어사야)와는 매일 버스 안에서 나란히 앉아 수다를 즐긴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 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둘이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같이 부르거나, 학교 생활이 재미있네 어쩌네 뭐 그런 얘길 한다고.

점심도 학교 식당에서 나오는 메뉴를 즐거워하며 받아 먹고 있다.
남편이 박사 마지막 해를 보내며 수업을 하지 않아도 돈을 받을 수 있는 펠로십을 받게 되었지만 액수가 일할 때에 비해 적은 편이어서 좀 '짜치는' 편인데 (남편, 이거 보고 웃었지 방금? ㅋㅋㅋㅋ) 다행히 무료 급식 대상자가 될 수 있어서 아이 밥값 걱정은 덜었다. 이거 안 되는 상황이었음 좀 힘들었을지도..

가난한 학생 배우자 신분의 마지막 기회를 활용하여 워크퍼밋을 신청했는데 석달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다. 이렇게 늦어지면 헤드스타트는 못가고 결국 집앞 아시안 마트에나 가서 일해야 할 판인데...ㅠㅠ 그래도 좋으니 좀 오기나 하면 좋겠다. 뭐라도 해서 푼돈이라도 벌어야지 이게 뭐람.

야심차게 내놓은 책은 팔리지도 않고,
워크퍼밋은 안 오고,
좋아서 몰빵하고 있는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이 내게 돈을 벌어다 줄 리도 없는데,
난 뭐가 이리 좋은지 애 스쿨버스 태워 보내고 나면 책 보고 글 쓰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 하느라 신이 났다.
책 보고 글 쓰고 활동가로 살아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으련만.


유치원 등원 첫날


[비마이너]에 글을 싣다 by Alyson

원영 님의 두 번째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쓴 글을, 비마이너에도 실었다.
비마이너는 내가 장애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알게 된, 한국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모드의 장애문제 전문 언론사.
애정하는 필자 원영 님의 책이어서 애초에 후기를 쓸 생각이기도 했지만, <변론>은 장애당사자 뿐 아니라 당사자 부모에게도 가닿는 글이라 생각해서 나는 '엄마' 입장에서 글을 썼다. 그랬더니 비마이너에서 연락이 와서는 내 글을 실어도 되겠냐고.. (당근 나야 영광이지...! 비마이너인데!)

페이스북의 비마이너 페이지에서 나름 반응이 괜찮은 걸 보면, '엄마' 입장에서 쓴 글이 주는 효과가 있긴 한 것 같다.
사실 장애문제에 관해 읽고 쓰다 보면, 나의 '비 당사자성' 때문에 회의적인 입장에 놓이게 되는 때가 있는데 이번 글을 쓰면서는 조금이나마 그런 회의감을 덜 수 있었다.

---

 ‘잘못된 몸’을 낳은 엄마의 ‘자격’에 관하여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