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러시아 혁명사 읽기 by Alyson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를 야심차게 읽기 시작했지만 1,200 페이지 중 이제 400페이지 지나고 있다. 
역사책 싫어라하는 내게 '재미있다'는 느낌을 주는 거 보면 이게 다른 역사 아니고 '혁명사'여서 그런 듯?
근데 트로츠키 코멘터리 너무 작렬해서 짜증이 날 때도...
'자기 편'의 역사를 서술하려고 작정한 사람에게 객관성 같은거 기대하면 안되는 줄 아는데 그래도 좀 짜증.

보충 자료가 필요한 듯하여 위아매니 톡도 몇 개 같이 듣고 있는데, 
자코뱅에서 100주년 기념으로 시리즈 칼럼 내보낸 걸 이제야 알게 됨. 
진작 이걸로 읽을 걸(?!). 차이나 미에빌의 악토버, 도 조만간 읽을 예정.  
일단 그간 읽은 것 노트+자코뱅 칼럼 요약부터. 

1. 1917년 2월 이전 (글 바로가기) 

- 1904-05년, 한반도&만주를 놓고 러-일 간에 전쟁
- 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
- 농민-영주, 노동자-사용자, 민중-왕조의 갈등구조 심화
- 전함 포템킨 수병 반란 / '소비에트' 조직되기 시작, 노동자 파업 빈발
- 1914년 사회주의 그룹 신문 '프라브다'의 일일 판매량이 삼, 사천부(!)
- 1914년 1차대전 / 형식상의 의회인 Duma 세워짐 
(Duma는 남성 지주/자본가들이 주인 조직)

- 전쟁 초기에는 애국주의 바람으로 인해 청년층에서 대거 전쟁에 자원.
- 그러나 전쟁기간 중 민중 수백만명이 전쟁 중 부상, 빈곤으로 사망 
- + 왕가에서는 라스푸친...(순시리..)의 영향으로...
- 전장에서 농민 출신 병사와 장교급 사이에 갈등이 심화
- 전쟁 지속으로 군수물자를 대자니 노동자가 더 필요하거든. 그래서 전장에서 병사-장교 갈등이 심화되는 사이에 페트로그라드에는 노동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남. (1914년 24만명 선에서 1917년 39만명 선으로 증가)

- "못살겠다, 갈아보자"의 대규모 바람이 오고 있다...

* 로자 룩셈부르크
* 유진 뎁스. IWW 

2. 2월 그날 (글 바로가기)

- 1912년 금광 광부들 파업 이후로 전쟁, 노동, 빈곤 문제로 인한 갈등이 표출되는 파업과 시위가 빈발.
- 1916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 기념일에 14만명이 넘는 규모의 파업 발생. 

- 1917년 2월 23일(그레고리안 달력으로 3월 8일, 그러니까 여성의 날)에 남편/아들들을 전장에 보내고 하루 13시간씩 일하면서도 굶주리던 직물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 시작. ("Women instigators in the Neva Thread Mills shouted, “Into the streets! Stop! We’ve had it!” pushed the doors open, and led hundreds of women to nearby metal and engineering works.")

: 이 '언니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역사 속에 남은 건 순 남자들인가. 역시 짜증스럽..

- 3일만에 파업/시위자 (학생 포함) 수가 24만에 이름. 
- 2월 27일,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지만 차차 군인들도 군중에 합류, 정치범 석방, 소비에트 조직, 그러나 이때 조직된 소비에트의 중심에는 1905년에 노동자들이 직접 구성한 소비에트와 달리 혁명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남성 지식인들이 리더 격으로 존재. 이때 이미 태생적 한계가...  

-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을 것을 걱정한 케렌스키 등이 소비에트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임시 정부를 조직하려고 나섬. 그래서 이 임시 정부 조직하려는 자들이 소비에트 내 다수파(맨셰비키)와 막후 협상. 맨셰비키는 원래 '혁명 이후'는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부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오고 있었고, 볼셰비키도 막연하게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오고 있었음. 볼셰비키의 '혁명 이후' 전략이 불분명/부재한 상태. 

- 볼셰비키 안에 전투적 볼셰비키들이 있었는데(직물공장 여성노동자들), 볼셰비키 지도부가 반대하거나 우물쭈물해서 충분히 뜻을 펼치지 못했음. (언니들 말 좀 듣지?)

- 혁명으로 차르 체제를 끝내긴 했지만, 차르 대신 들어선 건 결국 자유주의 남성 자본가/지식인 조직인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

- 8개월간 이중 권력 체제(임시 정부와 소비에트) 유지. 

- 이 와중에 볼셰비키 안에서는 혼란이 계속. 스탈린 등의 귀환 이후 볼셰비키가 우경화 되기 시작. 

- 레닌도 1905년에는 '부르주아 혁명' 완수를 위해 '임시정부' 수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1917년 2, 3월을 거치며 트로츠키주의(?)적, 국제주의(?)적 사회주의로 입장을 바꿈. (근데 트로츠키주의가 뭐야?) 

3. 핀란드 역에서 (글 바로가기)

- 차르 내려가고 들어선 임시 정부. 
명목상 수장(prime minister)은 왕족 출신 르포프, 외교 수장은 밀류코프, 법무 수장은 케렌스키. 
이들은 전쟁 지속을 원함. 

- 1917년 3월 1일, 페트로그라드에서 구성된 소비에트에서 '1호 명령'이란 걸 냄. 
이때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는 맨셰비키가 주도권을 쥔 상태. 맨셰비키는 임시정부의 권력이 부르주아에게 가는게 맞고, 노동계급은 견제하는 정도로 가는게 맞다고 봄.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됐다'  -- 를 왜 니들이 판단해?

- 3월 14일에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에서 평화선언문 같은 걸 냈는데 이게 전쟁을 옹호하는 걸로 받아들여졌다고 함. (아니 왜?) 

- 하지만 이미 2월 혁명 전부터 전장의 병사들이 전투 거부, 도망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음.

- 1917년 4월, 레닌 복귀. 그가 발표한 4월 테제(April These)로 인해 볼셰비키의 입장에 변화가 생김. '전쟁 지속 원하는 부르주아/제국주의적 임시정부에 반대한다' 레닌 복귀 전에는 볼셰비키 내부가 우경화 되고 있었음. 맨셰비키와의 통합, 전쟁 지속 등을 주장. (스탈린 등의 영향)

- 레닌의 4월 테제는 다음 단계(프롤레타리아 지배 체제로 전환)로 가야 한다는 내용. 이에 대해 구 볼셰비키 파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 부르주아 혁명이 아직 완수되지 않았는데 그게 뭔 헛소리냐며. 

- 전쟁 지속과 중단을 놓고 임시 정부의 입장과 소비에트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민중의 시위와 이에 맞서는 친정부 시위가 빈발

-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가 세를 더 얻으면서 임시정부에서 자기네 뜻대로 밀어부칠 수 없다는 걸 깨달음. 어떤 식으로든 소비에트를 좀 더 개입시키는 수밖에. 임시정부에서 통합정부 구성을 제안하고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집행부 구성원들을 내각에 편입시킴. 그러나 소비에트 자체가 아직 맨셰비키의 주도 하에 있었으므로..

- 볼셰비키는 통합정부 구성에 반대, 따로 혁명 준비. 








두 번째 감염 by Alyson

5월 4일 오후 3시 반 경,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오는데 오른쪽 무릎 뒤가 아프다고 해서 보니 약간 벌개진 상태.
벌레 물린 거 아닐까 싶을 만큼 부위가 작고 상태가 심하지 않았음. 

그런데 밤에 잘 때쯤 돼서 체온이 오르고, 다리에 열감이 느껴지면서 애가 잠이 빨리 들지 않고 들뜨는 느낌.  
지난 12월에 있었던 감염 증세와 유사해 보여서 일단 애를 침실에 두고 짐싸기 시작..(혹시 이번에도 입원해야 할까봐) 

밤 10시쯤 응급실 행. 가는 길에 체온계를 가져가서 계속 체온을 확인했는데, 병원 근처에서 확인했을 때 체온이 떨어져 있어서 몹시 망설이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한다며 응급실 들어감. 

응급실 들어가서 두 시간 정도 머무는 동안, 체온이 급격하게 오르지는 않았음. 
다리에 열감과 벌건 기운이 조금 더 번지긴 했음. (무릎 뒤쪽+발목 쪽)
응급실에서는 감염이라 하더라도 심한 건 아닌 것 같으니 일단 먹는 항생제 처방 받아서 가고, 
내일 아침 이후로 갑자기 더 심해지면 꼭 전담 의사랑 팔로업하라고 지시. 

밤 12시쯤 병원에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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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약간 있고, 통증도 약간 있으니 집에 와서 타이레놀을 먹이고 재웠는데 아침까지 별 탈 없이 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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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오전, 예정대로 스테잇 파크에 피크닉 감.
잘 놀긴 했는데 밝은데서 보니 확실히 벌건 기운이 번지는게 보임. 
항생제 처방 받은거 사와서 먹이기 시작. 
항생제는 Keflex (Cephalexin), 한번에 5ml씩 하루 네 번. 

항생제 먹은지 이, 삼일 만에 벌건 기운도 부종도 빠짐. 
별 다른 이상 징후는 없고, 평소보다 약간 지치는 느낌? 
(5월 6일 일요일에 지섭이랑 놀다가 평소보다 일찍 헤어짐. 오후 3시쯤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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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를 5월 13일까지, 끝까지 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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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두번째 감염 끝. 

문제는, '왜'

사실 추정 불가능. 
다른 외부 자극이 없어도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게 림프성 감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이게 생기기 며칠 전에 종아리 켈로이드에 액상 실리콘을 한두번 발랐는데, 그건 아닐 것 같단 말이지. 
오픈된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액상 실리콘을 매일 많은 양을 바른 것도 아니니까. 
양이나 지속성으로 따지면 발등 켈로이드에 바르던 스테로이드(clobetasol)이 독하고 센 약이어서 그게 영향을 미쳤을까 싶기도 하지만.. 알 수가 없음. 
그러니까 '왜'를 따지는 건 의미 없을지도.

중요한 건, '어떻게' 대처하는가.

다행히 산이도 다른 성인 환자들처럼(ex. 아리아나) 감염이 올 때 시작 증상을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고, 
그걸 우리도 민감하게 캐치하는 편이라 빨리 대처할 수 있음. 
이번처럼 열이 확 오르는게 아니면 가급적 릭스 워크인으로 닥터 보고 항생제 처방 받는 걸로 하는게 좋겠고, 
열이 급히, 많이 오르면서 다리가 전체적으로 뜨겁고 붓는 느낌(12월 감염 당시 라일리 응급실에서의 상황을 상기)이 든다면 지체없이 응급실 가서 IV 항생제 처방 받도록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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